전북여성노동자회

젠더가 실종된 대통령 개헌안을 규탄한다

 

 

3월 20일 오전 청와대는 헌법 전문, 총강 및 기본권 관련하여 대통령 개헌안 요지를 발표하였다. 조문 전체를 공개한 것이 아니기에 전모를 다 파악할 수는 없으나, “국제사회가 한국에 기대하는 인권수준에 맞게 천부인권적 성격의 기본권을 ‘모든 사람’에게로 확대하고, 국민주권을 강화하였다”는 것이 주된 골자이다. 나아가 지속가능한 발전과 동물보호에 대한 헌법적 근거조항까지도 마련하였다.

 

그런데, 막상 여성과 관련된 조항은 단 하나, ‘성별·장애 등 차별개선노력 의무 신설’ 뿐이었다. 우선 순위로 치환할 수는 없으나 생태 정의 차원의 동물보호를 헌법적 가치로까지 끌어올리고, 국제사회의 인권수준을 언급하는 2018년 상황에서 젠더를 의도적으로 실종시킨 대통령 개헌안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젠더 실종의 상황을 연출하면서 어떻게 ‘국민개헌’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동안 여성계는 현행 헌법이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차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차별 사유를 늘려 열거하도록 요구해 왔다. 또한 모든 영역에서의 심각한 성차별과 폭력을 해결하기 위하여 적극적 조치를 포함한 실질적 성평등 실현을 위한 국가책무를 헌법에 명시할 것을 주장해 왔다. 특히, 세계적으로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는 여성대표성 확대를 위한 선출직과 임명직 등의 공직진출 및 직업적, 사회적 모든 영역에서의 남녀의 동등한 참여 보장에 대해 거듭 강조해 왔다. 여성대표성 확대가 이번 개헌에 꼭 들어가야 할 최소한의 내용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여성계를 비롯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뿐만 아니라 국회 여‧야 모두 공감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발표된 대통령 개헌안 요지에는 ‘성별·장애 등 차별개선 노력 의무 신설’이라는 단 하나의 여성관련 조항이 있을 뿐이다. 최소한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여성대표성 확대 조항조차 없었다. 그간 논의에 비춰봤을 때 명백한 퇴행이며, 자칭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서 부끄러운 개헌안 요지가 아닐 수 없다.

 

현재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미투 운동은 뿌리깊은 성차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인 처방은 성별권력관계 해소 뿐이다. 성별에 따른 위계와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성중심적인 법체계부터 바꿔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가장 상위법인 헌법에 ‘성평등 사회 실현’이라는 가치가 반드시 국가 목표조항이자 방향으로 담겨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국제사회 즉, 유엔 위민(UN WOMEN)과 여성차별철폐협약, UN 지속가능발전 2030 등에서 달성하려고 하는 젠더전환적 접근법(gender-transformative approach)의 헌법적 실현인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과제이기도 한 ‘성평등 사회 실현’은 국가와 우리 사회의 근본 가치이자 목표, 방향성이 되어야 달성될 수 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몇 가지 특화 정책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헌법에서부터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를 변혁하고, 동등한 의사결정 및 자원 접근 등을 보장하고, 여성의 역량강화를 고취하기 위한 의지를 명확히 밝히며, 이를 위한 확고한 성주류화(gender-mainstreaming) 조치를 할 때에만 달성될 수 있다. 이미 하위법에서 실천하고 있는 성별영향분석평가의 정신이 개헌에서도 담보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개헌안 요지를 발표하면서 대통령이 거듭 강조한 ‘국민 중심 개헌’ ‘국민의 뜻’에 결국 ‘여성’은 없었다. 대통령이 언급한 ‘내 삶이 바뀌는 개헌’은 여성의 삶과는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진정 여성의 삶을 바꾸는 헌법이 되기 위해서는 ‘성평등’ 가치와 젠더 관점의 조항이 반드시 헌법에 담겨야 한다. 아직 개헌안 요지만 발표하였을 뿐, 조문 전체가 발표되지 않았으므로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이런 희망이 좌절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국회에도 요구한다.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들의 뜻인 개헌에 성실히 임하며 올해 6월 개헌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아가 성차별 해소, 성평등 실현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위해 여성들을 배제하지 않는 개헌안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다시 한 번 요구한다.

○ 헌법 전문에 헌법 원칙과 국가 방향으로서의 성평등 실현 포함

○ 선출직과 공직 진출 및 모든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 보장

○ 적극적 조치를 포함한 실질적 성평등 실현‧보장 의무 명기

○ 다양한 가족을 포괄하는 가족 구성권 명시

○ 성적 주체로서 존엄의 원칙과 재생산권 신설

○ 국가 재정 운용 기준으로 ‘성평등 효과성’ 적용

 

2018년 3월 20일

한국여성단체연합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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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북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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